페이지 정보
최고관리자 작성일25-04-23본문
심준보 전 서울고법 부장판사 <사진=백성현 기자>
"법관 인센티브 체계 붕괴로 사법부 엔진 꺼져 … 재판 지연 원인"
심준보 전 서울고법 부장판사
2025년 초, 심준보(59·사법연수원 20기) 전 서울고법 부장판사가 사직서를 제출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법원 안팎은 술렁였다. 법원 내부에선 ‘이제 사법부는 어떤 사람도 붙잡지 못할 것’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로펌 업계에서는 ‘거물급이 나왔다’고 반색했다. 심 전 부장판사는 “열심히 일하려는 의욕을 북돋우는 보상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심 전 부장판사는 “법관에 대한 인센티브 체계가 무너지면서 사실상 ‘사법부의 엔진’이 꺼져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재판 지연 현상도 그 일인(一因)을 여기서 찾을 수 있다고 했다.
“근무기간에 따라 자동으로 승급하는 단일호봉제 아래서 법원장 보임을 포함해 법관 전보인사마저 경직적 기준에 따라 기계적으로 해 왔다. 이런 상황에서 판사들이 열심히 일하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요인이라고 해야 사실상 고등법원 부장판사(고등부장) 승진 하나뿐이었는데, 이제는 그마저도 없앴다. 어떤 조직이든 사람은 유인책에 반응한다. 판사도 인간이다. 열심히 일한 뒤 인정을 바라는 것은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일을 잘하고, 열심히 하는 판사가 더 대우받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형식적인 인센티브라도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심 전 부장판사는 사법부의 현재 상황에 대해 일종의 ‘순환적 위기’라고 했다.
“법원의 위기는 신뢰의 위기부터 시작했다. 문제는 이게 장기화될 때 구성원들이 좌절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나는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 사람들이 나를 이런 눈으로 보고 있었구나’라며 자괴감을 느끼게 되고, 그게 고질병이 되면 좌절감에 젖는 것이다. 자신을 평가하는 기준은 엄격하고, 자존감이 강한 사람일수록 더 그렇다. 실제로 이런 이유로 사직을 결심한 분들이 적지 않다. 다음에 이어지는 것이 ‘지속성의 위기’다. 탁월한 구성원이 법원을 떠나고, 자격을 갖춘 사람일수록 법관직에 지원하지 않는 상황이다. 이 단계가 길어지면 ‘전문성의 위기’가 온다. 법원의 역량이 재야 법조에 추월당하는 상황이다. 물론 특정 전문 분야에서 특화한 변호사보다 법관의 전문성이 떨어지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그렇지만 전반적인 역량의 문제로 비화하는 상황은 그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이런 위기가 다시 ‘신뢰의 위기’를 심화하게 되면 악순환의 고리가 형성되는 것이다. 그에 더해 ‘미래가 그려지지 않는다’, ‘예측 가능성이 없다’는 데서 오는 답답함도 법원에서 이탈하게 하는 원심력으로 작용한다.”
심 전 부장판사는 사법 자원이 유한한 상황에서 “중요한 부분에 집중해야 한다”고도 했다.
“훌륭한 사람들이 법관직에 지원하고, 나아가 법관으로서 오랫동안 열심히 재판하게 만들려면 나라 전체로 보면 결국 ‘돈’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음으로는 확보한 재원을 어떻게 나눠야 하는지, 최우선으로 재원을 투입해야 하는 부분과 포기하거나 뒤로 미뤄야 하는 부분이 무엇인지 결단해야 한다. 군진(軍陣) 의학에서도 ‘트리아지(Triage, 부상자 중증도 분류)’를 하지 않나. 모든 사건이 다 똑같이 중요하므로, 똑같이 다루어야 한다는 것도 현실성이 없다. 더 뛰어나고 일 잘하는 판사들이 더 의미있고 중요한 사건을 재판하고, 어떤 형태로든 그 직무의 중요성이나 성과에 상응하는 보상을 받는 체계가 있어야 한다. 판사들 스스로 위기를 명철히 인식해 이를 해소하는 데 앞장서지 않으면 자칫 외부의 간섭을 불러들일 수 있다. 이 경우 인센티브가 아니라 연임 심사의 외부화나 엄격화 같은 ‘디스인센티브’를 활용하게 될 수도 있다.”
함석천 전 대전지법 부장판사 <사진=백성현 기자>
"10년 간 연봉 제자리 … 경제적 이유·자긍심 하락이 사직의 주된 동기"
함석천 전 대전지법 부장판사
함석천(56·사법연수원 25기) 전 대전지법 부장판사는 2022~2023년 제5·6기 전국법관대표회의 의장을 맡을 정도로 법원과 동료 판사들에 대한 애정이 컸다. 그런 그도 2025년 2월 법원을 떠났다. 다양한 세대의 판사들과 직접 소통한 그가 사직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오래 근무했다. 법원에서 제 소임을 다했다는 생각이 들었고, 전국법관대표회의 의장을 마치면서 그런 생각이 강해졌다. 사직하는 분마다 사연이 있겠지만, 보수 문제, 자긍심 하락, 성과에 대한 보상 부재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객관적인 보수는 낮다고 볼 수 없지만 업무량을 고려한다면 보수가 높다고 보긴 어렵다. 연봉에 수당이 포함되면서 세율이 올라 물가상승률을 고려할 때 가처분소득이 줄었다. 사직한 판사들은 대체로 경제적인 이유를 사직의 이유로 들고 있다. 가장 심각하게 생각해 봐야 할 부분은 자긍심 하락이다. 법관들은 법정에서조차 존중받지 못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판사를 법관평가의 대상으로만 보는 것 아니냐는 푸념도 종종 들었다.”
‘판사가 더 이상 명예롭지 않다’는 목소리에 공감하는지 묻자 함 전 부장판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법정에서 충분히 숙고해서 증거 채부에 관한 명령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대리인이나 변호인이 본인의 생각과 다르다고 심각하게 항의할 때 판사 생활이 쉽지 않다고 생각했다. 요즘은 당사자도 법정에서 쉽게 화를 낸다. 때로 돌아서며 욕을 하기도 한다. 판사들이 이런 부분에 있어선 단호해졌으면 좋겠다. 법정에서 화를 내는 당사자, 때로는 변호사를 보면서 별다른 조치를 취할 수 없을 때에 자괴감이 강하게 들었다. 법정에서 판사를 존중하는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
함 전 부장판사는 “판결을 하는 법관을 홀로 두는 현상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고도 했다.
“법원마다 정문 앞에 현수막이 많이 걸려있고 시위를 하기도 한다. 어떤 때에는 판사 사진을 걸어놓고, 아니면 바닥에 사진을 깔아놓고 수치심을 유발한다. 사법행정 차원에서 법관에 대해 애정을 가져줬으면 한다. 재판을 한 판사에 대한 부당한 공격이 있다면 대법원장부터 법원장에 이르기까지 단호하게 그런 상황을 막아줘야 한다. 조치가 효과가 없어도 개별 판사는 그 노력을 보고 위안을 얻고 용기를 얻기 때문이다.
이밖에도 판사들이 궁금해하는 사항에 대해 설명을 생략하거나 양해를 구하는 빈도가 낮아진다고 느껴왔는데, 예를 들어 전보와 관련해서도 지원하지 않았던 임지에 보임돼 당황하는 상황이 벌어진다면 개별 연락을 통해 사전 협의뿐 아니라 사후 설명이 뒤따라야 한다.”
함 전 부장판사는 “전국법관대표회의 의장을 지내면서 중견 법관과 달리 젊은 법관일수록 대의나 추상적인 이념보다는 구체적이고 생활과 밀접한 사안에 민감하고 느꼈다”고 말했다.
“젊은 법관일수록 공평 관념에 무게를 둔다. 의장으로 활동하는 동안 배석 판사 근무 연한, 직무 성과금의 분배, 해외 연수 기회 보장의 공평에 관한 문제들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반면 중견 법관들이 관심을 가졌던 고등법원 부장판사(고등부장) 승진 제도나 법원장 보임은 연차가 내려갈수록 관심에서 멀어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사법행정에 관한 판심(判心)을 전국법관대표회의를 통해 읽어낼 수 있다. 의결을 통해 공표되는 법관대표회의 의안을 보고 판심을 읽고 행정에 반영한다면 사법행정이 보다 원활해질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정치권이나 외부 단체의 목소리에만 귀 기울이기보다 내부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강창효 전 수원회생법원 판사 <사진=백성현 기자>
한창 일할 나이 젊은 판사도 … "내 집 마련할 수 있을지 '현타' 왔다"
강창효 전 수원회생법원 판사
강창효(38·사법연수원 42기) 변호사는 임관한 지 8년 만에 사직하고, 개인 법률사무소를 차렸다. 이례적으로 부장판사가 되기도 전에 사직해 법원 내부에서는 화제가 됐다. 한창 일할 ‘젊은 판사’는 왜 사직했을까. 강 변호사는 사직을 결심한 가장 큰 이유로 ‘보수’를 들었다.
“날이 갈수록 물가는 오르고 민간과의 급여 격차는 커지고 있다. 집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은 상황에서 주거 마련에 관한 고민이 컸다. 온전히 내 힘으로 내 집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조차 없었다. 판사의 급여는 업무 강도에 비하여 턱없이 낮은 수준이고, 내 경력과 노력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한다는 느낌이 컸다. 그 외에 법관을 존중하지 않는 사회적인 분위기에 소위 ‘현타’가 왔다. 자긍심만으로는 경제적인 부분에서의 불만을 덮을 수 없었다. ‘나가서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보다는 훨씬 나을 거 같다’고 생각했다. 공무원 가운데에선 판사 급여는 많은 수준이지만, 민간과 비교해 보면 턱없이 낮다. 일반 회사에 다니는 친구들조차 판사 급여를 듣자, 열의 아홉이 ‘판사가 그렇게 적게 받고 일하는 줄 몰랐다’는 반응이었다.” ‘현타’는 ‘현실 자각 타임’의 줄임말로, 현실을 깨닫는 순간을 뜻하는 속어다.
강 변호사는 “선배 판사들이 낮은 급여에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예전에는 지금처럼 집값이나 물가가 비싸지도 않았고, 판사를 존중하는 사회적 분위기, 판사로서의 명예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요즘 주위를 둘러보면 법관에 대한 존중과 신뢰가 존재하는지 의문이다. 쓸데없는 시비에 휘말리지 않을까 걱정돼 법관이라는 신분을 밝히기조차 어렵다. ‘판사만큼 좋은 직업이 어디 있느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선배 판사들처럼 사회·경제적으로 완전히 안정되지 못한 후배 판사들의 입장에서는 이런 시대의 변화가 크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개인적으로 판사로서 8년 동안 나를 희생하며 국가를 위해 봉사했다는 생각이 있었다. 적정한 경제적, 사회적인 보상 없이 계속해 희생을 해야 하는 이유를 찾기가 어려웠다”고 말했다.
동기부여 부재를 지적하자, 강 변호사는 이 역시 “경제적인 유인이 해결책”이라고 답했다.
“굳이 승진 제도일 필요는 없다.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적정한 보상을 원하는 것이지, 승진에 대한 기대가 아니라고 본다. 고등법원 부장판사(고등부장) 승진 제도는 법관들을 무한 경쟁시키고, 통계를 좋게 만들기 위한 일종의 ‘고삐’라고 생각한다. 고등부장 승진을 앞두고 실적을 내기 위해 배석 판사들에게 무리한 판결문 작성을 강요하는 일종의 관행이 있었기 때문에 판사들의 삶의 질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 면이 있었다. 더 이상 법관 개개인에게 헌신을 요구할 수 없는 사회적 분위기로 흘러가고 있다. 최근 사법정책연구원으로부터 법관의 보수체계 개선 관련 설문조사 메시지를 받았다. 형식적으로 조사만 하고, 힘없이 국회와 여론의 벽에 가로막혔다면서 법관들을 좌절시키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그는 경력법관들은 과거보다 더욱 급여에 대해 민감할 수 있다고 말했다.
“경력 법관은 과거의 판사들과 같이 법원을 평생 직장처럼 생각하지 않는 경우가 많고, 직업에 대해 다채로운 시각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판사라는 직업도 지나가는 하나의 경력일 수 있는 것이다. 대형 로펌에서 몇 년 동안 혹독한 시절을 보내다가, 돈은 적게 벌더라도 업무적으로 편해지고 싶어서 법원에 들어오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결국은 급여 수준에 대한 불만을 이야기하고, 다시 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경우를 봤다.”
https://www.lawtimes.co.kr/news/207452
"법관 인센티브 체계 붕괴로 사법부 엔진 꺼져 … 재판 지연 원인"
심준보 전 서울고법 부장판사
2025년 초, 심준보(59·사법연수원 20기) 전 서울고법 부장판사가 사직서를 제출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법원 안팎은 술렁였다. 법원 내부에선 ‘이제 사법부는 어떤 사람도 붙잡지 못할 것’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로펌 업계에서는 ‘거물급이 나왔다’고 반색했다. 심 전 부장판사는 “열심히 일하려는 의욕을 북돋우는 보상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심 전 부장판사는 “법관에 대한 인센티브 체계가 무너지면서 사실상 ‘사법부의 엔진’이 꺼져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재판 지연 현상도 그 일인(一因)을 여기서 찾을 수 있다고 했다.
“근무기간에 따라 자동으로 승급하는 단일호봉제 아래서 법원장 보임을 포함해 법관 전보인사마저 경직적 기준에 따라 기계적으로 해 왔다. 이런 상황에서 판사들이 열심히 일하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요인이라고 해야 사실상 고등법원 부장판사(고등부장) 승진 하나뿐이었는데, 이제는 그마저도 없앴다. 어떤 조직이든 사람은 유인책에 반응한다. 판사도 인간이다. 열심히 일한 뒤 인정을 바라는 것은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일을 잘하고, 열심히 하는 판사가 더 대우받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형식적인 인센티브라도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심 전 부장판사는 사법부의 현재 상황에 대해 일종의 ‘순환적 위기’라고 했다.
“법원의 위기는 신뢰의 위기부터 시작했다. 문제는 이게 장기화될 때 구성원들이 좌절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나는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 사람들이 나를 이런 눈으로 보고 있었구나’라며 자괴감을 느끼게 되고, 그게 고질병이 되면 좌절감에 젖는 것이다. 자신을 평가하는 기준은 엄격하고, 자존감이 강한 사람일수록 더 그렇다. 실제로 이런 이유로 사직을 결심한 분들이 적지 않다. 다음에 이어지는 것이 ‘지속성의 위기’다. 탁월한 구성원이 법원을 떠나고, 자격을 갖춘 사람일수록 법관직에 지원하지 않는 상황이다. 이 단계가 길어지면 ‘전문성의 위기’가 온다. 법원의 역량이 재야 법조에 추월당하는 상황이다. 물론 특정 전문 분야에서 특화한 변호사보다 법관의 전문성이 떨어지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그렇지만 전반적인 역량의 문제로 비화하는 상황은 그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이런 위기가 다시 ‘신뢰의 위기’를 심화하게 되면 악순환의 고리가 형성되는 것이다. 그에 더해 ‘미래가 그려지지 않는다’, ‘예측 가능성이 없다’는 데서 오는 답답함도 법원에서 이탈하게 하는 원심력으로 작용한다.”
심 전 부장판사는 사법 자원이 유한한 상황에서 “중요한 부분에 집중해야 한다”고도 했다.
“훌륭한 사람들이 법관직에 지원하고, 나아가 법관으로서 오랫동안 열심히 재판하게 만들려면 나라 전체로 보면 결국 ‘돈’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음으로는 확보한 재원을 어떻게 나눠야 하는지, 최우선으로 재원을 투입해야 하는 부분과 포기하거나 뒤로 미뤄야 하는 부분이 무엇인지 결단해야 한다. 군진(軍陣) 의학에서도 ‘트리아지(Triage, 부상자 중증도 분류)’를 하지 않나. 모든 사건이 다 똑같이 중요하므로, 똑같이 다루어야 한다는 것도 현실성이 없다. 더 뛰어나고 일 잘하는 판사들이 더 의미있고 중요한 사건을 재판하고, 어떤 형태로든 그 직무의 중요성이나 성과에 상응하는 보상을 받는 체계가 있어야 한다. 판사들 스스로 위기를 명철히 인식해 이를 해소하는 데 앞장서지 않으면 자칫 외부의 간섭을 불러들일 수 있다. 이 경우 인센티브가 아니라 연임 심사의 외부화나 엄격화 같은 ‘디스인센티브’를 활용하게 될 수도 있다.”
함석천 전 대전지법 부장판사 <사진=백성현 기자>
"10년 간 연봉 제자리 … 경제적 이유·자긍심 하락이 사직의 주된 동기"
함석천 전 대전지법 부장판사
함석천(56·사법연수원 25기) 전 대전지법 부장판사는 2022~2023년 제5·6기 전국법관대표회의 의장을 맡을 정도로 법원과 동료 판사들에 대한 애정이 컸다. 그런 그도 2025년 2월 법원을 떠났다. 다양한 세대의 판사들과 직접 소통한 그가 사직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오래 근무했다. 법원에서 제 소임을 다했다는 생각이 들었고, 전국법관대표회의 의장을 마치면서 그런 생각이 강해졌다. 사직하는 분마다 사연이 있겠지만, 보수 문제, 자긍심 하락, 성과에 대한 보상 부재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객관적인 보수는 낮다고 볼 수 없지만 업무량을 고려한다면 보수가 높다고 보긴 어렵다. 연봉에 수당이 포함되면서 세율이 올라 물가상승률을 고려할 때 가처분소득이 줄었다. 사직한 판사들은 대체로 경제적인 이유를 사직의 이유로 들고 있다. 가장 심각하게 생각해 봐야 할 부분은 자긍심 하락이다. 법관들은 법정에서조차 존중받지 못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판사를 법관평가의 대상으로만 보는 것 아니냐는 푸념도 종종 들었다.”
‘판사가 더 이상 명예롭지 않다’는 목소리에 공감하는지 묻자 함 전 부장판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법정에서 충분히 숙고해서 증거 채부에 관한 명령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대리인이나 변호인이 본인의 생각과 다르다고 심각하게 항의할 때 판사 생활이 쉽지 않다고 생각했다. 요즘은 당사자도 법정에서 쉽게 화를 낸다. 때로 돌아서며 욕을 하기도 한다. 판사들이 이런 부분에 있어선 단호해졌으면 좋겠다. 법정에서 화를 내는 당사자, 때로는 변호사를 보면서 별다른 조치를 취할 수 없을 때에 자괴감이 강하게 들었다. 법정에서 판사를 존중하는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
함 전 부장판사는 “판결을 하는 법관을 홀로 두는 현상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고도 했다.
“법원마다 정문 앞에 현수막이 많이 걸려있고 시위를 하기도 한다. 어떤 때에는 판사 사진을 걸어놓고, 아니면 바닥에 사진을 깔아놓고 수치심을 유발한다. 사법행정 차원에서 법관에 대해 애정을 가져줬으면 한다. 재판을 한 판사에 대한 부당한 공격이 있다면 대법원장부터 법원장에 이르기까지 단호하게 그런 상황을 막아줘야 한다. 조치가 효과가 없어도 개별 판사는 그 노력을 보고 위안을 얻고 용기를 얻기 때문이다.
이밖에도 판사들이 궁금해하는 사항에 대해 설명을 생략하거나 양해를 구하는 빈도가 낮아진다고 느껴왔는데, 예를 들어 전보와 관련해서도 지원하지 않았던 임지에 보임돼 당황하는 상황이 벌어진다면 개별 연락을 통해 사전 협의뿐 아니라 사후 설명이 뒤따라야 한다.”
함 전 부장판사는 “전국법관대표회의 의장을 지내면서 중견 법관과 달리 젊은 법관일수록 대의나 추상적인 이념보다는 구체적이고 생활과 밀접한 사안에 민감하고 느꼈다”고 말했다.
“젊은 법관일수록 공평 관념에 무게를 둔다. 의장으로 활동하는 동안 배석 판사 근무 연한, 직무 성과금의 분배, 해외 연수 기회 보장의 공평에 관한 문제들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반면 중견 법관들이 관심을 가졌던 고등법원 부장판사(고등부장) 승진 제도나 법원장 보임은 연차가 내려갈수록 관심에서 멀어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사법행정에 관한 판심(判心)을 전국법관대표회의를 통해 읽어낼 수 있다. 의결을 통해 공표되는 법관대표회의 의안을 보고 판심을 읽고 행정에 반영한다면 사법행정이 보다 원활해질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정치권이나 외부 단체의 목소리에만 귀 기울이기보다 내부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강창효 전 수원회생법원 판사 <사진=백성현 기자>
한창 일할 나이 젊은 판사도 … "내 집 마련할 수 있을지 '현타' 왔다"
강창효 전 수원회생법원 판사
강창효(38·사법연수원 42기) 변호사는 임관한 지 8년 만에 사직하고, 개인 법률사무소를 차렸다. 이례적으로 부장판사가 되기도 전에 사직해 법원 내부에서는 화제가 됐다. 한창 일할 ‘젊은 판사’는 왜 사직했을까. 강 변호사는 사직을 결심한 가장 큰 이유로 ‘보수’를 들었다.
“날이 갈수록 물가는 오르고 민간과의 급여 격차는 커지고 있다. 집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은 상황에서 주거 마련에 관한 고민이 컸다. 온전히 내 힘으로 내 집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조차 없었다. 판사의 급여는 업무 강도에 비하여 턱없이 낮은 수준이고, 내 경력과 노력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한다는 느낌이 컸다. 그 외에 법관을 존중하지 않는 사회적인 분위기에 소위 ‘현타’가 왔다. 자긍심만으로는 경제적인 부분에서의 불만을 덮을 수 없었다. ‘나가서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보다는 훨씬 나을 거 같다’고 생각했다. 공무원 가운데에선 판사 급여는 많은 수준이지만, 민간과 비교해 보면 턱없이 낮다. 일반 회사에 다니는 친구들조차 판사 급여를 듣자, 열의 아홉이 ‘판사가 그렇게 적게 받고 일하는 줄 몰랐다’는 반응이었다.” ‘현타’는 ‘현실 자각 타임’의 줄임말로, 현실을 깨닫는 순간을 뜻하는 속어다.
강 변호사는 “선배 판사들이 낮은 급여에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예전에는 지금처럼 집값이나 물가가 비싸지도 않았고, 판사를 존중하는 사회적 분위기, 판사로서의 명예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요즘 주위를 둘러보면 법관에 대한 존중과 신뢰가 존재하는지 의문이다. 쓸데없는 시비에 휘말리지 않을까 걱정돼 법관이라는 신분을 밝히기조차 어렵다. ‘판사만큼 좋은 직업이 어디 있느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선배 판사들처럼 사회·경제적으로 완전히 안정되지 못한 후배 판사들의 입장에서는 이런 시대의 변화가 크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개인적으로 판사로서 8년 동안 나를 희생하며 국가를 위해 봉사했다는 생각이 있었다. 적정한 경제적, 사회적인 보상 없이 계속해 희생을 해야 하는 이유를 찾기가 어려웠다”고 말했다.
동기부여 부재를 지적하자, 강 변호사는 이 역시 “경제적인 유인이 해결책”이라고 답했다.
“굳이 승진 제도일 필요는 없다.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적정한 보상을 원하는 것이지, 승진에 대한 기대가 아니라고 본다. 고등법원 부장판사(고등부장) 승진 제도는 법관들을 무한 경쟁시키고, 통계를 좋게 만들기 위한 일종의 ‘고삐’라고 생각한다. 고등부장 승진을 앞두고 실적을 내기 위해 배석 판사들에게 무리한 판결문 작성을 강요하는 일종의 관행이 있었기 때문에 판사들의 삶의 질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 면이 있었다. 더 이상 법관 개개인에게 헌신을 요구할 수 없는 사회적 분위기로 흘러가고 있다. 최근 사법정책연구원으로부터 법관의 보수체계 개선 관련 설문조사 메시지를 받았다. 형식적으로 조사만 하고, 힘없이 국회와 여론의 벽에 가로막혔다면서 법관들을 좌절시키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그는 경력법관들은 과거보다 더욱 급여에 대해 민감할 수 있다고 말했다.
“경력 법관은 과거의 판사들과 같이 법원을 평생 직장처럼 생각하지 않는 경우가 많고, 직업에 대해 다채로운 시각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판사라는 직업도 지나가는 하나의 경력일 수 있는 것이다. 대형 로펌에서 몇 년 동안 혹독한 시절을 보내다가, 돈은 적게 벌더라도 업무적으로 편해지고 싶어서 법원에 들어오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결국은 급여 수준에 대한 불만을 이야기하고, 다시 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경우를 봤다.”
https://www.lawtimes.co.kr/news/207452